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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일상, 라이프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참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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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 20세 이상의 경기도민 내 결격사유가 없는 무작위 배심원 후보자 150명 추첨

 

어느 날 갑자기 퇴근하고 돌아오니 우편함에 집배원이 우편물 미수령 스티커를 붙이고 가셨다.

 

우편물 도착 안내서

최초 방문일시(1차) : xxxx년 xx월 xx일 xx시 xx분

다음 방문예정일시(2차) : xx월 xx일 xx시에서 xx시 사이

※ 특별송달(법원) 우편물은 xx월 xx일 xx시에서 xx시 사이에 세 번째 방문 후 안 계시면 우체국에 보관 없이 반송됩니다.

 

수원지방법원에서 날아온 일일 특급 등기였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었다.

 

"법원에서 날 왜...? 뭔가 잘못한 게 있었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국민참여재판 형사사건에 참여할 배심원 후보자를 무작위로 추첨한다는 내용이었다.

2008년 1월, 처음 한국에서 시행되었고 미국의 배심원제와 같은 한국의 법적 제도중 하나이다.

이 등기우편은 본인이 직접 수령해야 하고, 특별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벌금 200만 원을 내야 한다..

 

민방위에 출석 안 해서 내는 벌금보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급하게 우체국에 전화해서 등기를 수령하였더니, 아래와 같은 배심원 안내서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선정기일에 출석하라는 내용이었다.

국민참여재판 선정기일통지서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이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고자 할 때, "국민들의 평결을 받고 싶다" 고 요청하면 시행된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은 그림자 배심원처럼 개인이나 단체에서 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나라에서 추첨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선택받은(?) 국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배심원 안내서

2. 선정기일 출석 및 최종배심원 선발

 

국민참여재판에 끌려(?)가면 당연히 이에 해당하는 보수를 지급한다. 선정기일에 출석하면 6만 원, 최종배심원으로 선발이 되면 12만 원을 받는다. 최종배심원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오후 6시 이후부터는 3시간당 4만 원씩 초과수당을 준다.

 

오전 9시 45분까지 출석한 배심원 후보자들은 착석하여 재판에 관한 간단한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다가 재판장님과 판사 2명, 피고인의 변호사와 검사님이 들어오게 된다. 이제 최종배심원을 선발하게 되는데 배심원석에 무작위로 9명을 착석시키고 프로듀스 101이 시작된다. (변호사와 검사의 질의응답을 통해 최종배심원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다.)

최종배심원은 총 7명이고 예비 2명을 특별한 상황에 대비하여 뽑는다. (누가 예비배심원이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무작위로 뽑여서 온 150명의 후보자들 중에서 다시 한번 무작위로 뽑힌 7명이 되었다.

 

검사님의 질문:

이 사회의 성범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범죄의 당사자가 된다면 얼어붙을 것인지 반항을 할 것인지?

 

변호사님의 질문:

만약 당신은 목욕탕에서 갑자기 불이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만약 살인자가 달려든다면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최종배심원 후보자들은 각각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을 내놓았다. 검사님과 변호사님의 쪽지가 재판장님에게 전달되고 몇 후보자들은 교체되었다. 보통 오전 11시가 되기 전에는 최종배심원이 모두 선발되어 나머지 후보자들은 귀가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피고인이 출석하면서 형사재판이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땅 땅 땅)

 

3. 형사재판의 시작

 

죄수복을 입고 등장한 피고인은 많이 초췌한 모습이었다. 영화 "배심원들" 속의 사람들처럼 엄숙한 분위기에서 재판이 시작되었다.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한 이유의 대부분은 "무죄" 판결이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최종배심원의 평결이 재판장의 판결과 이어지는 일치율은 11년 간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무려 93% 라고 한다.

 

재판은 사건에 맞게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고 나는 최종배심원의 대표자로 자발적으로 손을 들었다. 사건에 대해서 꼼꼼하게 읽어보고 법적 근거도 따져가며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모두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결론으로 이끌어 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재판이 모두 끝나면 평의실에 모여서 의견을 충분히 나누고 만장일치의 원리로 평결을 이끌어내야 한다.)

 

모두 절차 -> 증거조사 절차 -> 증인 진술 -> 피고인 진술..

 

대부분의 시간이 해당 사건의 재구성(증거와 증인, 진술서 검토)에 사용된다.

 

오전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본적인 모두 절차를 마치고 법원 내 식당에서 점심시간을 가졌다.

법원에서는 인솔자의 통제에 따라 함부로 건물 밖을 나갈 수가 없다. 치약과 칫솔을 개인별로 나누어주고 2시간의 점심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법원식당 내 점심시간

4. 사건의 재구성 (증거조사)

 

점심식사 이후 14시부터 재판이 다시 시작되고 피고인이 형사 2명과 함께 등장하며 착석하였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재판과는 다르게 길게 끌지 않고 하루 만에 사건을 종결시킨다. (최장 2~3일에 걸쳐 끝나지 않은 사건도 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살짝 들은 이야기지만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는 일찍 끝나면 10시라고 하셨다.. ㄷㄷ

 

증거조사 절차에서는 재판장님의 말씀에 따라 3가지 법적 효력이 있는 근거에 바탕하여 진행한다고 한다.

1) 피해자의 진술

2) 목격자의 진술

3) 물질적인 증거(도구, CCTV 등)

 

사건의 내용에 대해서는 발설해서는 안된다고 하셔서 자세하게 설명은 할 수 없으나, 결론만 말하면 증거가 없다.

오로지 경찰/검찰 진술서의 일관성과 피해자의 진술로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애매한 사건이었다. 간접적인 블랙박스 영상이나 CCTV 영상이 존재하였지만 명확하게 해결을 해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나중에 재판장님께 들은 내용이지만 이보다 더 애매한 사건들도 많다고 하셨다.)

 

거의 반복되는 진술서의 내용과 증인의 진술, 검사님의 피고인 확인사실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오후 6시를 훌쩍 넘겨 밤 거의 12시까지 재판이 진행되었다. 저녁식사는 음료수와 샌드위치로 대체되었고 약간 정신적으로 피로함이 느껴지는 찰나에 모든 순서가 끝이 나고 최종배심원들은 평의실에 모여 토의를 진행했다.

저녁식사 대신 받은 음료와 샌드위치

5. 최종 평결

 

최종배심원들의 자신들이 생각하는 평결(유/무죄)간단한 의견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이때 정말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느꼈다.

 

성격이 급한사람/느린사람, 감정적인사람/이성적인사람, 좁은시각으로보는사람/넓은시각으로보는사람..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통일하고자 하였으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약간의 티격태격이 있었다.

분명히 유/무죄의 평결 중 1가지와 간단한 의견을 한 바퀴 들어보고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하였는데, 한 바퀴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유/무죄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와.. 상세한 의견으로 제한시간을 초과하시는 분이 두 명 정도 있었다. 결국 재판장님을 호출하여 법적 자문을 구하고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사건의 판결이 "유죄"인 경우 재판장님과 판사 2명 그리고 최종배심원 모두가 협의하여 적정한 형량을 결정한다.

징역 4년과 성범죄교육 120시간 이수를 확정하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과 피고인의 가족들이 모두 울고 있었다. 하지만 사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잘못된 부분을 공평하게 바로잡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이라고 생각한다.

(피고인은 아마 항소를 준비할 것이다.)

 

늦은 밤 모든 재판이 끝나고 다시 평의실에 모여 귀가 준비를 하였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최종배심원에게는 아래와 같은 감사장을 받게 된다. 국민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경험과 법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가 되어 뜻깊은 하루였다.

 

감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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